'야외에서 온 편지' 이번 호에서는 신경 다양성을 가진 스콧 코니시(Scott Cornish)가 트랜스알프 솔로 라이딩에 대해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복이 가득했던 그 험난한 모험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아 있다고 반추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재미있으면서도 인사이트도 가득한 글이죠. 한번 시작해 볼까요?
Catherine
'야외에서 온 편지' 에디터
그냥 걷기도 힘든 곳을 밤새 기온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장비를 가득 실은 자전거를 짊어지고 걸었습니다. 계곡 끝에 있는 공터에 들어서자 자갈길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내린 눈이 얇게 한 겹 쌓여 있는 산등성이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죠. 우뚝 솟은 산등성이는 절대 오르지 못할 곳처럼 보였습니다. 희미한 빛 사이로 출구가 보일 듯 말 듯하다가 안부(col, 평평한 능선 중간에 움푹 파인 낮은 고개를 의미)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트레일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의 싱글 트랙을 따라 나오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아슬아슬한 커브 길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돌아야 했습니다. 야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의 침묵을 깨는 유일한 소리는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돌멩이 소리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바람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 목소리는 목청 터지게 소리 지르고 있었죠. 미끄러운 진흙에 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좌절감만 늘어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잠시 멈췄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제가 얼마나 자주 어려움을 겪었는지 생각이 나면서 마음속 오래 묵은 감정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알프 마운틴 바이크 여행은 지난 제 모습과 비슷한 면이 많았습니다. 저는 비록 공식적으로 신경 다양성이라고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일평생 신경 다양성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인생은 '복잡한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제 앞에 놓인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끊임없이 무력함을 느끼며 자라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스스로 명확한 경계선을 긋게 되었죠.
30대 후반에 난독증 진단을 받았고 최근에는 ADHD와 경미한 자폐증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 일평생 남들과 '달랐는지' 그제서야 명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바이크패킹을 하면서 왜 바이크패킹이 저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생을 탐색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이번에 선택한 트랜스알프 코스는 프랑스 샤모니(Chamonix)에 위치한 제 집에서 출발해 지중해 연안의 생타굴프(Saint Aygulf)까지 690km를 달리는 코스로 그중 상승 고도가 약 24,300m 되어 결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야생의 자연 풍경을 통과하며 중간중간 카페에서 산 고급 과일 타르트를 연료 삼아 힘을 냈습니다. 산을 넘으면서 라이딩의 장르가 마운틴 라이딩으로 바뀌었습니다. 긴 오르막과 낮은 고개를 넘고 구불구불한 알프스 싱글트랙을 달리고,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드는 짜릿한 내리막길을 질주하며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지형 대부분이 2,000~2,60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벗어날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 함부로 가기에는 위험한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 광활한 자연 속에서 저는 한낱 점 하나에 불과했지만 놀라우리만치 평안함을 누렸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속한 사회적 환경이나 그리고 그 가운데 만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자주 놀림감이 되었고 제 자리는 어디일지 늘 고민했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책이었던 당시 글을 통해서는 기본적인 개념도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학교에 다니는 것도 제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문자들을 보고 있자면 마음에 안개가 가득 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로든 글로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운동 감각을 써야 하는 수업에서는 날개를 펼쳤습니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 만들거나 시각 자료를 통해 학습하는 상황에서는 소용돌이치듯 몰려오는 혼란에서 벗어나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적 수준은 얼마나 책을 얼마나 잘 읽는지, 글을 얼마나 잘 쓰는지를 바탕으로 결정되었고 제가 가진 장점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자 제 장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다른 능력을 발견하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마음속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이따금 저를 괴롭혔습니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자전거를 끌며 질퍽한 진흙에 발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꽉 준 탓에 팔과 종아리는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광활한 산 중턱에서 그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자전거를 이고 지고서 아무 탈 없이 더 갈 수 있을까?’
이전에 봤던 작은 쉼터가 저를 유혹했습니다. 쉴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죠. 저는 이전에도 상황이 버거워지면 늘 한 발 뒤로 물러나곤 했었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발 물러나 나만의 장소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죠. 행사 때문에 바빴던 날은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하기보다는 트레일화를 꺼내 신고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반사회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어울리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뿐이죠.
석양의 붉은 빛이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에 물드는 순간 낮은 고개 하나를 올랐다는 사실에 저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큰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긍정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제한받는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순간, 자전거를 짊어지고 하이킹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걱정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능선 반대편으로 4km 내려가 전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퓨지 드 라 쿠아르(Refuge de la Coire)에 도착했습니다.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혹독한 날씨를 피할 수 있는 곳이었죠. 이 모험을 해내리라고 마음먹은 제게 주어진 보상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초가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밖으로 나오니 높은 봉우리와 굽이치는 산등성이로 둘러싸인 경관이 웅장하게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해가 떠오르며 수평선 너머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V자 모양 안으로 햇빛을 쏟아냈습니다. 따스한 햇볕에 야외 식탁 위에 쌓여 있던 눈이 녹아내렸죠. 안부를 정복했다는 안도감에 아침 식사를 배불리 했습니다.
저는 시즌 후반에 라이딩에 나섰고, 이맘때쯤이면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인프라가 대부분 폐쇄된 상태이기 때문에 알프스 트레일을 하이킹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자칫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의미였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Garmin InReach를 휴대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저는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외롭지도 않았죠. 그리고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을 극도로 어려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함께 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레일에서 만난 몇몇 사람과 대화도 즐겁게 나눴고,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언덕 위 몽(Mons)이라는 마을의 카페에서 다른 트랜스알프스 라이더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 밤, 생장 드 라 모리엔(Saint Jean de la Maurienne) 마을 외곽에서 캠핑 장소를 찾다가 어느 집 앞에서 자전거를 닦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집 뒷편의 들판에서 캠핑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던 중 그 남자의 친구 한 명이 다가왔습니다. 자기 정원에 캠핑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서는 어쩌다 보니 다른 여섯 명의 사람과 함께 맛있는 집밥과 술이 있는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험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안부를 넘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소의 저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죠.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요.
다수의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딩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평소라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자신감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저는 그저 같은 라이더일 뿐,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다른 부분을 숨길 필요도 없죠. 그렇게 수년간 라이딩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 제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생각을 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산의 봉우리와 골의 높이가 극명해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2,995m의 콜 드 라 느와르(Col de la Noire)까지 180도 경사에다가 급커브까지 많은 트레일을 올라 또 한 번 종아리가 불타는 경험을 하며 계획한 경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에 거칠게 깎여버린 봉우리가 360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야말로 삶의 굴곡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들 살면서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은 '정상'으로 간주되는 것 이상의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합니다. 특히 불안이 그렇죠. 극도에 달하기도 하고 오래 지속되기도 하는 불안은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불안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페달을 밟거나 (아니면 트레일을 따라 러닝하는 것), 손을 사용하는 활동 또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죠.
내려가는 길도 굉장했습니다. 높은 산의 싱글 트랙에서 고산 목초지로 이어지며 계곡 아래로 흐르는 강을 따라가는 길은 길고 험난했습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마음에 비해 주변은 고요했고 덕분에 트레일의 흐름과 지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길 끝에서 만난 카페에서는 지친 손목의 긴장을 풀고 맛있는 베이커리를 먹으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죠.
생타굴프의 해변에 앉아 제 마음만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 모험을 반추하며 그때의 느낌을 떠올립니다. 신경 다양성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는 반면 바이크패킹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깨닫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되었죠. 문제를 해결하고, 계획을 세우고,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이들에게 제가 아는 지식을 전수해 도움을 줄 수도 있죠. 그리고 이렇게 글로 또 사진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도 되었죠. 이번 트랜스알프 모험은 체력적으로는 무척 힘든 여정이었지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제게 있으며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제 자신을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준 그야말로 동아줄이 된 것이죠.
글 및 사진: 스콧 코니쉬
스콧 코니쉬는 신경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며 라이딩 모험을 사랑하는 라이더이자 러너이기도 합니다. 'Perform Unbound'라는 곧 출시된 콘텐츠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신경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신경 다양성 환자에게 사회가 지운 무거운 짐에 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만약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을 때는 글을 쓰기도, 코칭을 하기도, 프랑스 샤모니에 위치한 자신의 물리치료실에서 라이더의 자전거 피팅을 돕는 일을 합니다.